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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가 건달농사라구?

DrFarm2 2024. 12. 23. 13:13

지인에게 얻어 3월말에 심은 완두콩은 신통하게 1주일 만에 싹이 올라왔다. 원래 손이 가장 안간다는 고구마를 심으려고 했는데, 당장 뭔가 해야 될 것 같은 마음에... 찾아보니 다음으로 빨리 심을 수 있는게 감자라고 한다.
 
3월 20일경 씨감자 반박스를 얻어다가 유튜브보며 잘라뒀다. 어떤 유튜버는 자를때마다 칼을 소독을 하라는데... 그게 되냐? 그냥 시골 어른들 하는 것 처럼 수건으로 쓱쓱 닦아가며 씨눈 들어가도록 2~3조각으로 잘라놓았다. 헛... 그런데 2~3일 지나니 자른 면에서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정말로 칼을 소독하면서 잘랐어야 했나? 후회가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씨감자를 새로 사서  다시 시작하기엔 내가 너무 게으른... 어차피 처음이라 연습삼아 심는 것이니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걸 골라서 감자이랑 5보 길이에 12뿌리를 심었다.

자른 씨감자와 3일후 곰팡이가 핀 씨감자

지금 생각하면 한심하지만, 당시엔 감자 두둑을 쌓는 것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대충 삽으로 두둑을 만들었다. 당장은 퇴비가 없어 유기질비료를 사서 약간 뿌려주고, 땅속 벌레 방지용 토양살충제도 약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가늠이 안서 그냥 기분대로 뿌려주고 말았다. 그리고는 두둑 주위 고랑에만 풀 나지 말라고 잡초방지매트를 깔고, 위에도 풀 나지 말라고 검정비늘을 덮었는데... 딴에 옆구리는 또 숨쉬라고 남겨두었다. ㅋㅋㅋ 그거야 뭐 풀만 뽑아주면 될 일인데... 정작 중요한게 흙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지 않고 덮어버렸다는거... 그러니 잘 클 리가 있나. 텃밭 옆 작은 도랑에서 물을 떠다가 갈때마다 깨작깨작 물을 준게 전부였다.  
 
관정을 하나 파야겠다 싶어 지인에게 전화번호를 받아 연락을 했었는데, 지금은 바쁘니 모내기 끝내고나서 전화주겠다고 했는데... 그후로 감감무소식이다.
 
4월말에는 고구마를 심었는데, 고구마 이랑도 마찬가지로 준비가 엉망이었다. 이번에는 고구마 심을 두둑에 비닐을 덮고 사이사이 고랑에 잡초매트를 덮어 두었는데, 역시 비온 다음에 수분이 충분한 상태에서 비닐을 씌웠어야 하는데, 마른 땅에 그냥  덥석 비닐을 씌워 버렸더니... 고구마싹을 심어도 비실비실 살아나질 못하고 쓰러져 있다.

앞 두줄) 말라가는 고구마 싹, 뒷줄) 튼튼하게 피어나는 감자 싹

그렇게 좌충우돌 막무가내로 완두콩, 감자, 고구마를 심어놓고 도랑에서 깨작깨작 물을 길어다 주는데도... 완두콩과 감자는 신통하게 무럭무럭 싹이 잘 자란다. 이렇게 신통방통 고맙고 이쁠 수가... ㅎㅎㅎ 사과나무도 싹이 하나씩 트더니 하얗게 이쁜 사과꽃이 피었다. 

늠름하게 자라나는 완두콩 줄기
사과꽃

 
내 땅 있어 좋은게 뭔가... 내친김에 평소에 좋아하던 가죽나물을 직접 심어보자 싶었다. 인터넷 찾아보니 참죽나무를 사다 심으라는데, 옥천 묘목시장 가서 찾아도 마땅치 않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인터넷으로 배송해준다던 작은 묘목농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5만원 주고 6주를 사다 심었다. 나무가 밭에 그늘을 만들면 안되겠기에 가장자리에 3주, 산쪽 언덕에 3주 심었는데... 얘들은 스스로 죽거나, 위치가 맘에 안들어 옮기다가 죽어버렸다.
 
우낙 귀가 얇은 사람이라서 블루베리가 키우기 편하다는 얘기를 그냥 넘기기 힘들었다. 묘목시장 간길에 묘목 4주를 6만원 주고 샀다. 얘들도 공부를 좀 하고 사와서 키웠어야 하는데... 그냥 무턱대고 사와서 아무 대책없이 물만 주고 키웠다. 원래 첫해는 꽃을 따주어 나무를 키우라고 하던데, 그땐 아무 생각이 없이 이쁘게 핀 꽃이 마냥 좋기만 했다. 

좌) 꽃만 바글바글 달린 블루베리, 우) 정상적인 블루베리

4개중에 한 나무는 이파리가 거의 없고 꽃만 바글바글 달렸는데... 그걸 다 따버리고 가지치기를 좀 해줬어야 하는데, 아는게 없어 그냥 방치하며 첫해를 보내버렸다.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 첫해 관리에 대한 지식이 없는 관계로 처음부터 열매를 먹어볼 요량으로 처다만 보다가 몇알 제대로 달리지도 못했다.
 
역시 농사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냥 접하기 쉬운 유튜브만 들여다 보니, 이런저런 서로 다른 말들이 많아 갈피를 잡기 힘들다. 비료를 줘라 말아라, 농약을 쳐라 말아라, 친환경약이 효과가 있다 없다... 저마다 자신있게 얘기하는 통에 귀얇은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 잡기가 쉽지 않다. 
 
4월말 처음 심은 고구마가 태반은 말라죽어, 싹을 새로 사다가 죽은 애들을 뽑아내고 심었다. 감자는 무럭무럭 잘 크는데 고구마는 이거 영 비리비리 기운이 없다. 

튼튼하게 자라는 감자
물부족과 고라니 공격에 비리비리한 고구마 싹

어느날 아침에 밭에 가보니 고구마 이파리 대부분이 잘려져있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겨져 있다. 이전에 이곳에서 농사지으시던 앞집 할아버지가 밭주위로 뺑뺑돌아 노루망을 처놓아주셨는데도 아침에 가보면 항상 고라니 발자욱이 가득하다. 얘들이 아예 밤마다 출퇴근을 하시는 것 같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고구마심은 두둑에 노루망을 덮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처음에는 노루망의 무게에 눌려있는 듯 했지만 고라니 먹질 못해 이파리들이 빡빡하게 잘 자란다. 가끔 망을 뚫고 삐져나오는 싹들은 노루가 따먹겠지만 나머지는 무성하게 잘 자란다. 

고라니 망을 덮은 고구마싹 (6월26일)
고라니 공격을 이겨내고 불쑥불쑥 크는 고구마 싹 (7월17일)

앞집 할아버지가 햇빛을 가려 괜찮겠냐고 걱정하셨지만, 노루망을 덮은 후 고구마잎이 무성하게 자라나 노루망을 훌쩍 들어올릴 정도가 되어버렸다. 6월들어 비도 자주 오고, 고구마는 비료를 주는 게 아니라고 하니 이제는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이런 어리버리한 초보농부의 손에서 자란 고구마가 10월에는 빨갛게 잘 여물은 열매를 제법 많이 보여주었으니, 그래 건달 농사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ㅎㅎㅎ

왼쪽부터 완두통, 블루베리, 대파
6월하순 감자캐기

6월에는 완두콩과 감자를 재미나게 수확했다. 아, 이런 어리버리 초보 농사꾼의 손에도 이렇게 잘 자라주는구나 싶어 감사하고 이쁘고 뿌듯하고... 10월에는 고구마도 제법 캐내어 텃밭의 재미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10월 하순 고구마 캐기

8월에는 서리태콩도 심었는데, 처음에 잘 크는가 싶더니만 여지없이 고라니의 공격에 이파리들이 남아나질 않는다. 결국 비리비리한 열매를 맺어 결국 한알도 못먹고 말았다. 하지만 무우는 비료와 토양살충제만 약간 뿌려 두둑 만들고, 새싹날때 농약 한두번 처준 것 말고는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신통하게도 무럭무럭 잘 커주어서, 불안한 눈으로 초보농부를 바라보던 가족들에게 힘 좀 줄수 있게 되었다. ㅎㅎㅎ

 
고구마를 심겠다고 하니 대뜸 앞질 할아버지가 '멧돼지 들어올텐데'하고 걱정하시더니, 10월말경 정말 멧돼지가 밭에 들어와 온통 뒤집어 놓았다. 뺑뺑 돌아 쳐 놓은 저 노루망은 당췌 기능을 못하는 모양이다. 멧돼지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밭이 온통 망가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어, 다음 해부터는 고구마를 심지 못했다.  고라니는 어떻게 같이 지내보겠는데, 멧돼지하고 잘 지내기는 영 힘들어...